말리 – 구전 서사 시인 ‘그리오(Griot)’
서아프리카 말리에는 독특한 문화 직업군이 존재합니다. 이들은 역사가이자 시인이며, 음악가이자 조언자입니다. 바로 ‘그리오(Griot)’라 불리는 구전 서사 시인들입니다. 수 세기 동안 서아프리카의 역사와 문화는 문서가 아닌 이들의 입을 통해 이어져 왔으며, 지금도 그리오는 말리 사회의 기억의 수호자로 존경받고 있습니다.
1. 그리오란 누구인가?
그리오는 ‘젤리(jeli)’ 또는 ‘잘리(jali)’라고도 불리며, 주로 만데(Mande)족 계열의 문화에서 전통적으로 존재해 온 구술 전문가입니다. 이들은 가문의 역사, 왕국의 전쟁, 영웅의 업적, 계보, 도덕 교훈 등을 노래와 이야기로 전달합니다.
문자가 일반화되기 전, 그리오는 공동체의 ‘살아 있는 도서관’이었습니다. 이들은 기억과 말의 힘으로 역사를 보존하고, 결혼식, 장례식, 왕의 즉위식 등 사회적 행사의 핵심 인물로 활동해 왔습니다.
2. 세습되는 그리오 가문
그리오는 일반적으로 세습직입니다. 특정 가문에 속한 이들이 대대로 그리오 역할을 이어가며, 어린 시절부터 노래, 악기, 역사 구술, 시 창작 등을 훈련받습니다.
이러한 교육은 구체적인 글보다 음악적 리듬과 이야기 구조를 통한 기억법에 초점을 맞춥니다.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이야기로 역사를 전하는 방식으로, 구술 전통의 강력함이 유지됩니다.
3. 구전 시와 음악의 결합
그리오의 활동은 단순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대부분의 이야기는 전통 악기(코라, 발라폰, 응고니 등)의 연주와 함께 음악적으로 전달됩니다. 이는 듣는 이들의 몰입을 이끌고, 이야기에 생명력을 부여합니다.
대표적인 악기인 코라(kora)는 하프와 기타의 중간 형태로, 21줄을 가진 현악기입니다. 그리오는 코라의 음률에 맞춰 역사적 사건과 조상의 영웅담을 읊으며, 듣는 이들에게 공동체의 정체성과 자긍심을 불어넣습니다.
4. 사회적 지위와 역할
그리오는 단순한 예술가가 아닙니다. 역사적으로는 왕과 귀족의 조언자이자, 정치적 중재자, 언어의 기술자, 도덕적 교육자 역할을 수행해 왔습니다. 공동체 구성원들은 그리오의 이야기를 통해 자신의 뿌리를 배우고, 공동체의 규범을 내면화합니다.
특히 결혼 중매, 추모 행사, 대화 조정에 있어 그리오의 언어는 법적 효력과 같은 권위를 갖는 경우도 있으며, 그들의 말은 곧 공동체의 뜻을 대변하는 행위로 간주됩니다.
5. 현대사회 속 그리오의 변화
글로벌화와 문자 중심 사회의 확산은 그리오 문화에도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일부 젊은 세대는 구전 전통보다 문서화나 디지털 기록에 더 익숙하며, 그리오 역할의 필요성에 의문을 품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많은 그리오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음반으로 제작하거나, 유튜브와 소셜미디어를 활용해 전통을 계승하고 있습니다. 현대 악기와 전통 악기의 결합, 랩과 구전 시의 퓨전은 새로운 세대의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6. 유산으로서의 가치와 유네스코 등재
그리오 문화는 2008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며 국제적 인정을 받았습니다. 이는 단순한 문화의 보존을 넘어, 아프리카 공동체 내부의 연대와 구술 전통의 의미를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리오가 가진 가장 큰 가치는 ‘기억의 인간화’입니다. 디지털 시대에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직접적인 소통과 기억의 공유는 여전히 대체 불가능한 가치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 FAQ
- Q1. 그리오는 누구나 될 수 있나요?
전통적으로는 특정 가문에서 세습되지만, 현대에는 그리오의 정신을 계승하려는 다양한 예술가와 스토리텔러들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 Q2. 그리오의 이야기는 모두 사실인가요?
역사적 사실과 신화, 도덕적 교훈이 혼합된 경우가 많습니다. 이야기는 교육과 공동체 결속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사실 여부보다 전달하는 메시지가 중요합니다. - Q3. 말리 외 다른 지역에도 그리오가 있나요?
네. 세네갈, 기니, 감비아 등 서아프리카 전역에 그리오 문화가 존재하며, 지역마다 명칭이나 표현 방식이 조금씩 다릅니다.